[삶의 뜨락에서] 사무라이
여행은 중독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금단현상이 온다. 아침마다 화려하게 차려진 뷔페 음식 대신 운동하러 나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다음 여행지를 계획하며 달랠 수밖에 없다. 여행지 선택도 전에는 가보고 싶은 곳이 우선순위였으나 이제는 멀고 힘든 오지를 하루라도 젊을 때 다녀오고 싶다. 몸이 가장 건강하고 편안할 때 어려운 환경에 처한 곳을 찾아보고 싶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일본, 태국 그리고 한국을 다녀왔다. 일본 여행은 그동안 원죄로 인한 배타심으로 꺼려왔었다. 하지만 이번에 용기를 내서 지금까지 내가 어른들한테서 혹은 학교에서 듣고 배운 것을 다 내려놓고 내가 직접 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우리 일행은 뉴욕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일본 항공을 통해 삿포로에 도착했다. 다른 항공은 위탁 수화물 제한이 23kg이지만 일본항공은 15kg 이어서 17일간의 여정으로 짐을 준비한 우리는 일본에 들어가기 위해 짐을 재정비해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했다. 결국 일본인은 아담 사이즈를 선호하며 비행기 안의 공간도 낭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처음 방문지는 다테지다이무라로 사무라이 에도시대를 재현해 놓은 민속촌이었다. 직원들이 고유의상을 입고 그 시대 삶의 단면을 연극으로 보여주었다. 다만 홍보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연극도 일본어로만 진행되어 관객은 그 공연의 역사적 배경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없어 아쉬웠다. 단지 상상 속에서 시간여행을 하며 각자 아는 만큼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첫날은 노보리베츠 마호로바 호텔에서 유카타(일본 실내복)로 갈아입고 호텔 안을 누비며 실내와 옥외 온천에서 몸을 풀었다. 유카타를 입고 들어간 식당은 다다미방으로 꾸며져 있었고 우리 일행 100명은 각자 개인상을 받아 앉았다. 거기서 시식한 홋카이도의 싱싱한 해산물 요리와 광경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5성급 호텔인데도 객실이 모두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어 그들의 자긍심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날 호텔의 조식 뷔페는 바닷속의 생물을 다 끌어올려 온갖 재주와 공을 들여 차려낸 해물 백화점 같았다. 다음날은 도야호 유람선을 타기로 했으나 비가 온 관계로 대신 쇼와 신전과 사이로 전망대에 올랐다. 거기서 바라본 사방의 경관은 과연 우리 숨을 거의 멎게 했다. 다음 도착지는 지옥 계곡,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유황 냄새가 진동했다. 여기저기서 뜨거운 증기가 끓어올라 활화산으로 언제 용암이 분출될지도 모르는 은근한 생동감과 위험 사이를 줄타기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이 지옥 계곡이 열악한 환경이어서 생명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했지만 바로 옆으로 숲이 형성되어 있어 이 숲과 지옥 계곡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다. 그다음은 오타루로 이동했다. 한때는 오타루 운하를 중심으로 큰 상권이 형성되었었으나 지금은 완전 관광지로 변해 오르골당(music box museum)은 관광객으로 붐볐고 과연 박물관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조그마한 예쁜 소품들의 집산지답게 기타이치기라스 공방에 들러 휘황찬란한 유리 공예품을 즐길 수 있었다. 상품 하나하나가 새끼손가락만 한데다 색상이 화려하고 포장 또한 섬세해서 어린이 머리핀 하나도 예쁜 색종이로 싸고 예쁜 비닐봉지에 넣은 후 리본으로 묶어서 다시 중간 사이즈 백에 넣고 마지막으로 상호가 적힌 큰 백에 넣어주었다. 그 포장하는 모습과 그 과정 자체가 행위예술이었다. 내가 경험한 일본인들은 친절하고 성실했다. 그리고 그들은 당당했다. 하지만 영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서로 큰 불편을 느꼈다. 영어 발음이 무척 힘든 민족이다. 언제 그들은 영어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한 민족적 자존심을 내려놓고 세계적 공용어인 영어를 받아들일까 답답했다. 항상 지진과 쓰나미와 같은 재해를 고려해 건물은 낮게 짓고 한국인과는 다르게 집에 대한 집착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살림은 간소하게, 가능하면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살자는 주의인 것처럼 보였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사무라이 사무라이 에도시대 여행지 선택 지옥 계곡